[2010년]호주브리즈번일기

[2011.01] 호주에서 맹장수술을...?

lifewithJ.S 2016. 2. 1. 18:45



사람들은 다들 한치 앞의 일을 모른다고들 한다. 나는 사실, 늘 조심하면 한치 앞은 그나마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정말 내가 나의 한치앞을 모를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일단 호주 브리즈번에서의 New year 맞이, 12월 31일. 
정말 백년만에 가보는 한국 레스토랑 레드앤 그릴, 사실 레드앤 그릴은 한번도 가본 적 없다. 한국 레스토랑 가면 늘 웬지 집에서 싸게 해먹을 수 있는 걸 비싸게 먹는 것 같아서 아까워 안가지만 보쌈 같은건 집에서 해먹기 어려우니까 ㅠ_ㅠ 보쌈 김치도 ... 

역시 31일 답게 레드앤 그릴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레드앤그릴 보쌈. 보자마자 흡입.


진짜 한국 음식은 너무 비싸 ㅠ_ㅠ  냉면 한그릇에 15불이 훌쩍 넘으니.. 
우리나라 돈으로 만 육천원이 넘는다는 건데. 내가 냉면장사 하고 싶더군. 정말 돈만 있음 내가 냉면장사 한다 -_- 

아무튼 레드앤 그릴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나와 South bank 로 향했다. 새해 카운트 다운과 불꽃놀이가 South bank에서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발걸음을 빨리 해서 서둘러 도착한 덕분에 새해 카운트 다운도 무사히, 짧아서 아쉬운 불꽃놀이도 좋은 자리에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상당히 짧은 불꽃놀이였기에 다들 너무 아쉬워하며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나게 새해를 맞이하고 집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문자를 보내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정말 참을수 없는 복통을 느끼며 일어났는데 예전에도 복통이 있다가 좀 참으면 가라앉길래 열심히 열심히 참았는데 한시간 두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심해지면서 진땀이 나고 구토에 고열에 ... -_- 이쯤 되면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감기 몸살 증상같다며 그냥 참았다. 다들 병원 가라고 난리 난리 치는 통에 거의 실려가다시피 해서 가장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갔지만 동네 병원은 문닫았다 ㅡ_ㅡ 

결국 그 말만 듣던 PA (Princess Aelxandra) hospital  응급실에 거의 정말 다 죽어서 갔다. 내가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보면서도 기다리란다. 응급실인데 왜그렇게 분위기가 차분하던지 다들 죽을만큼 아파도 다들 그냥 기다리더라. 결국 접수를 하고 들어가서도 또 20분은 기다리고. ㅋㅋㅋㅋㅋㅋ 아, 여기서도 여유만만 호주인들인가 싶기도 하고. 허술하네, 병원. 우리나라는 응급실이라하면 난리법썩인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링겔 맞는 사람, 가족들, 별의 별 상황이 다 벌어지는데 이곳 응급실 조용하다. 


입원했던 Princess Alexandra


그런데 일단 응급실에 들어가 조치를 받기 시작하니 허술하단 말 쏙 들어가게 했다. 의사 다섯명, 여섯명이 다 나름대로 들어와 증상을 묻고 또 묻고 배를 두드려보고 눌러보고. 수십가지 질문 리스트를 들고와서 묻고 또 묻고. 

그래서 내가 한번은 '아까 그거 물어봤는데 왜 또 묻냐'고 물어보자 간호사가 웃으며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란다. 혹시나 빠뜨린게 하나라도 있으면, 혹시나 환자가 이쪽 의사한테 말했는데 저쪽 의사한테 말 안한 것이 있다가 착오라도 생기면 큰일이 아니겠냐면서. 

아... 지금까지 내가 보아오던 호주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정말 정확성과 철저함을 가하는 신중한 저 모습들이란. 의사나 간호사나 다들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무표정조차도 없고 다들 조근조근 친절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사실 호주 친구 S양이 간호사 웨지를 얘기했을 때 '헐, 머냐 간호사들 먼 돈을 그리 많이 받어?' 싶었는데 지금은 정말 '돈 많이 줄 만 하다' 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결국 나는 혈액 검사 결과 염증이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고 어디인지 정확히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도 안해본 CT 촬영을 해야했다. 나는 사실, 그간 피곤하면 앓는 증상이 있어서 그게 악화됐겠거니 했지만 아니란다, 절대 다 검사 해봐야한단다. 어익후.... 돈 없는데..... ㅠ_ㅠ 

그렇게 해서 결국 받은 진단은 맹장염! 
의사 다섯명들도 헷갈리게 했던 나의 증상은 맹장염으로 결론이 나서 
의사들조차도 서로 '엥? 정말?' '맞지? 거봐!' 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CT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예쁘장하고 정말 말 예쁘게하는 자신 만만해보이는 여의사가 와서 바로 수술하자고 해서.. 결국 내 생의 첫 수술을 호주에서 받게 되었다. 





a영어를 모르면 꼭 물어봐야해요. 

나는 나름대로! 그래도 그냥 어느정도 영어 해 라며 다녔었기 때문에 병원와서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쓰는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 외계어다. 의학용어가 나오니 정말 내가 듣고 있는건가? 아파서 안들리는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래서 그냥 머라머라 하든 고개를 끄덕 끄덕 했는데 갑자기 귀에 들어온 한마디 

'OPERATION' ??????????????????? 수술해야한다고????????????????

당연 수술까지는 생각도 못한 내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다가 'OPERATION'이란 말이 들리자 뜨악!!!!!!!!! 도대체 그동안 내가 무슨 말에 고개를 끄덕인거지??????? 
그래서 그 수술부위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APPENDIX'란다. 그래서 ....Huh?????????? 
당연히 맹장일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한 내가 게다가 그 단어도 몰랐다!! 그 쉬운 '맹장'이란 단어, 영어로 말하니 모르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하나하나 다 설명해달라고 했다. 아.. 함부로 고개 끄덕일게 아니구나. 내 생명이 왔다 갔다하고 내가 수술을 하느니 마느니가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미쳤다고 정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구나 싶은게.... 병원에서의 경험은 내 영어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다. 대화를 하다가 말 못알아 먹어도 흐름으로 알아야지 하며 그렇게 대처해왔던 내가 -_- 완전히 바뀌었다. 병원에선 대강대강 넘어가지 마라. 당신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a도움을 준 친구들, 아니 우리 가족들

이번에 입원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 하나. 
내가 우리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어쩔뻔 했나 하는 것. 내가 고맙다는 말은 하기가 민망해서 못했지만 진짜 진짜 감사하고 있다는거. 몇일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병원에 들러가며 웃게해준 (정말 병원에서 웃어본게 그때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 P양이랑 M군, 정말 정말 고맙다. 가족하나 없는 외국에서 가족역할을 해준 우리 가족, 다들 너무너무 고마웠다. 

새해부터 액땜 제대로 했으니 올 2011년에는 좋은 일만 있으려나보다! 
다들, happy new year :)